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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 항쟁의기관차〉 외세·파시즘에 맞선 민중정당

1930.1 상해에서 좌파세력에 공동대응한다는 목적을 내세워 한국독립당, 1935 의열단·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신한독립당·대한독립당을 해소·통합해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했다. 이후 김구에 의해 김구중심의 한독당(한국독립당)으로 통폐합 됐다. 해방이후 미군정은 임정(임시정부)을 철저히 무시했으며 김구는 개인자격으로 귀국해야했다. 그래서 한독당하와이 지부로 활동해온 이승만은 1945.10 정파정치를 반대한다며 탈당했으며 철저히 미군정지휘아래 움직였다. 1945.9 한민당(한국민주당)은 송진우를 초대수석총무로 결성됐으나 송진우가 암살된후 김성수가 수석총무가 된다. 한민당이 좌우합작위원회를 비난하는 입장을 밝히자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탈당하고 한민당은 호남지역친일파지주들의 정당으로 전락한다. 미소공동위와 3상회의결정이행이 무산되고 1948 유엔감시하에 이뤄지는 <단선단정>이 대두되는 한편 김구·김규식 등은 남북전지역의 총선거에 의한 통일정부구성을 주장했다. 김구의 한독당은 나라의 분단을 초래한 5.10단독선거에 참여하지않았고 한민당이 제1당이 됐다. 한민당은 1949 대한국민당과 통합해 민주국민당을 결성하고 이들은 1948~49 반 민특위활동을 전방위적으로 방해했으며 1949 농지개혁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하려는등 반민중적정책으로 1949 69석의 의석이 1950 2대총선에서 24석으로 줄어들었다. 전쟁직전의 1950.5 2대총선에서 김구·김규식계열의 <남북총선거파>와 무소속계열의 후보가 대거 당선됐다. 1951 이승만은 정권유지를 위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등의 세력과 함께 자유당을 창당했다. 전쟁·전후시기 공안사건·암살미수·개헌등의 정쟁속에 1955 민주국민당을 비롯한 반이승만세력이 결집해 민주당을 결성한다. 그러나 1956 대선에서 진보당창당추진위의 조봉암이 이승만에 이은 지지를 받으며 부상했다. 1961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진보정당들은 모두 해산되고 자유당세력의 일부는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에 합류하거나 민주당계열과 함께 신민당으로 이어졌다. 1987 6월항쟁의 민주화이후 남의 정당정치는 크게 민주공화당에서 이어진 전두환·노태우정권과 신민당에서 6월항쟁의 통민당(통일민주당)을 거친 김영삼이 3당야합으로 민자당(민주자유당)을 결성하면서 이명박·박근혜정권으로 이어지는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국민당(국민의힘)의 흐름과 박정희 시기 신민당의 대선후보로 성장한 김대중이 1987 6월항쟁의 통민당에서 평화민주당으로 분당한뒤 3당야합에 반대한 세력을 규합해 1991 민주당을 창당,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흐름으로 내려온, 친미수구보수와 친미개혁보수의 양당구도를 보여왔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파쇼적조건에서 공산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도 합법적으로 존재하는것이 불가능했다. 1987 6월항쟁이후 1990 민중당이 등장했으나 노태우군사파쇼정권하에 1992 사실상 강제해산됐다. 2000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고 2011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졌으나 역시 박근혜폭압권력의 파쇼적탄압에 의해 2014 강제해산됐다. 외세·파시즘과의 분투속에 2016 환수복지당이 창당됐다. 환수복지당은 2017 민중민주당으로 개칭됐다. 민중민주당은 2020 약칭을 민중당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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