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C
Seoul
2024년9월9일 월요일 13:34:20
Home아카이브기획4. 베트남의 서대문형무소, 호아 로 감옥

4. 베트남의 서대문형무소, 호아 로 감옥

4. 베트남의 서대문형무소, 호아 로 감옥



베트남수도 하노이중심부에는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와 비견되는 <호아 로 감옥>이 있다.

이 건물은 19세기말 프랑스에 의해 건설된 감옥으로 거대한 규모에 1953년에는 2000명이상을 수용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베트남독립운동가를 감금하고 고문하던 곳으로 사용되다가, 1954년 디엔빈푸우전투 패배로 프랑스군이 철군한 이후에는 미군포로수용소로 사용됐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의 절반정도만 보존돼 있고 나머지는 재개발되어 고층빌딩이 들어서있다.

 

감옥내부에는 당시 수용됐던 항불독립운동가들의 모양을 본딴 밀랍인형, 고문도구, 사형집행시 사용됐던 처형도구 등이 전시되어있다. 이곳은 고문보다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악명이 더 높았다고 하는데, 식중독과 굶주림, 세균감염 등으로 1달사이에 전체 수감자의 40%가 사망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어디든 탄압에는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수감됐던 독립운동가들은 감옥안에서도 프랑스제국주의자들과 꼭두각시정부를 풍자하는 극을 만들어 그들의 악행을 비판했으며, 극악한 고문과 탄압에도 이를 저항하며 투쟁을 벌였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수감자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는데, 죽음앞에서도 의연한 독립투사의 기개가 느껴진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를 연상케하는데 베트남의 항불독립운동가들이 어떠한 고초를 겪었을지 쉽게 그려진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조선통감부가 의병 등 반일세력을 탄압·수용할 목적으로 만든 감옥인데 수많은 항일독립투사들이 이곳에 수감되어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1945년 해방이후에는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외치던 수많은 양심수들 역시 수감되어 고초를 당한 곳이다. 현재 서울구치소의 전신이 바로 서대문형무소다. 이곳 서대문형무소와 같이 수많은 애국독립투사를 가장 악랄하게 탄압했던 곳이 바로 종로경찰서다. 종로경찰서에 의해 체포됐던 많은 이들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고초를 겪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도 종로경찰서는 미대사관의 궁궐수비대가 돼 가장 악랄하게 민중들을 탄압하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호아 로 감옥> 에는 전기고문을 연상시키는 고문도구도 있었다. 남코리아사회에서 고문기술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근안이다. 이근안에 의해 얼마나 많은 양심수들이 고초를 당하였는가. <호아 로 감옥>에서 그렇게 고문당하고 비인간적인 처우에 수난당하며 운명을 달리한 투사들을 기리는 추모탑이 한켠에 세워져있었다. 이곳에 수감되었던 양심수들과 그 가족들이 재회하여 찍은 흑백사진 한장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그 감정은 사뭇 달랐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이곳은 프랑스군이 패배하고 물러난 이후 미군포로수용소로 사용됐다고 했는데, 놀랄만한 사진들이 게시돼있다. 미군포로들이 수용소안에서 운동하는 모습, 기타를 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모습, 기도를 하는 모습,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습, 호치민주석에게 쓴 편지 등이 있는데 아주 대조적이다. 심지어 이곳에 수감됐던 미군포로들은 전투를 벌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편하다하여 이곳을 <하노이힐튼>이라고 했다고 한다. 


반면 베트남전쟁시기 수많은 정치범을 수감시키고 고문했던 많은 감옥중에서도 악명을 떨쳤던 곳이 있다. 바로 꼰다오섬이다. 그중에서도 타이거케이지. 타이거케이지는 말 그대로 호랑이우리다. 수감자가 생활하는 곳 위가 철창으로 돼 있는데 그위를 호랑이가 왔다갔다했다 한다. 이중삼중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호치민시에서도 한참 떨어진 꼰다오섬박물관과 주변 현장을 가면 확인할수 있는데, 호치민시내 전쟁박물관 한켠에는 콘다오섬수용소 모형이 재현돼 있기도 하다.


그곳에 가보면, 타이거케이지와 간수들이 사용했던 무기, 고문도구 등이 전시돼 있다. 많은 수용소가 고문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자행했는데 이곳 꼰다오수용소는 외부와 더욱 철저히 단절된 곳으로 그 강도는 더 했으리라 생각된다.


꼰다온섬수용소는 소설 <사이공의흰옷>의 남자주인공 호안이 수감됐던 곳이기도 하다. 실제 인물 레홍뜨.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소설 <사이공의 흰옷>은 남베트남에서의 반미반독재투쟁을 벌이던 청년학생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다룬 소설이다. 이 책이 더 유명해진 것은 실존인물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


소설속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혁명운동속에 사랑을 싹틔웠는데 여주인공이 수감된 이후 남주인공도 1961년 사이공주재미대사 차량폭탄투척사건과 연관돼 수감된다. 두 사람은 1975년 4월30일 남베트남이 해방된 이후 약 15년만에 재회하고 결혼한다. 오랫동안 투옥되어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은 혁명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았고 서로에 대한 의리도 저버리지 않았다. 


꼰다온섬에 가면 가혹한 탄압에도 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수많은 투사들을 기리는 <영웅탑>이 베트남정부에 의해 세워져 있다한다. 정부당국에서 유명무명의 수많은 열사들을 결코 잊지 않고 그들의 삶을 빛내어 주고있는 것이다.


지금도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 옥에 갇혀있는 많은 양심수들과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다. 우리민족의 온전한 자주통일의 그날 조국과 민중은 그들을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4_12.jpg 

4_1.jpg 

4_23.jpg 


4_8.jpg 

4_2.jpg 

4_5.jpg 

4_3.jpg 

4_26.jpg 

4_27.jpg 

4_4.jpg 

4_10.jpg 


4_11.jpg 


4_9.jpg 

4_24.jpg 

4_25.jpg 

4_13.jpg 


4_18.jpg 


4_14.jpg 


4_19.jpg 


4_15.jpg 


4_16.jpg 


4_17.jpg 

4_20.jpg 

4_21.jpg 

4_22.jpg 

4_29.jpg 


4_6.jpg 


21세기민족일보


관련기사
- Advertisement -
플랫포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