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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은신처, 구찌터널

3.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은신처, 구찌터널



호치민시 북서쪽으로 약 40여km정도 떨어진 곳에 구찌터널이 있다. 이곳의 원래 길이는 약 250km(서울-구미) 이상이었지만 지금은 120km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터널 안에는 병원과 부엌, 침실, 회의실 등이 설치돼 있다.


이 어마어마한 시설을 호미와 소쿠리 등으로만 손수 만들었는데, 수용가능인원이 10만명정도나 된다한다. 지하시설에 공기가 통하지않아 어떻게 살수있을까 싶은데 숨구멍도 따로 만들어놨다. 


터널입구를 잘 알수 없도록 위장시설도 설치해놨는데 입구가 파악되더라도 미군이 쉽게 들어올수 없게 좁게 만들어놓았고, 지하터널안에도 위장통로를 만들어놨다. 혹시나 미군이 파악하더라도 고립무원에 빠지기 쉽상인 구조다. 이곳에 들어가면 아주 좁은 통로에 이곳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싶을 정도의 좁은 통로로 돼있고, 그안이 미로처럼 되어있어 자칫 길을 잃어버릴수 있겠다는 공포감도 든다.


미군은 구찌터널이 있는 주변에 폭격기를 통해 엄청난 폭탄을 투하했는데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한 듯하다. 구찌터널은 3층구조로 1층은 통로, 2층은 비상통로, 3층은 주거지역으로 구성. 3층은 무사했다고 한다. 지하요새이자 군사통로로 사용됐던 구찌터널은 사이공시내까지도 연결돼 있다고 하는데, 현재 공개되고 있는 곳은 구찌시 외곽 벤즈억과 벤딘 두곳.


이곳 구찌터널은 남베트남민중의 항불, 항일전쟁 그리고 항미전쟁의 상징적 근거지로 모든 반외세투쟁을 결국 승리로 이끈 곳이라 말할수 있다. 이곳에서 항미전쟁을 지도한 조직은 바로 1960.12.20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3색깃발과 그 활동은 베트남의 여러 박물관 등에서 사진이나 전시물로 쉽게 접할수 있는데, 남베트남민중과 얼마나 깊게 호흡하고 있었는지 확인할수 있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30여개 애국적정당·사회단체들을 망라하며 출범했는데 민족민주연합정부수립, 진보적민주주의실현, 소작료경감·점진적토지개혁 등의 10대 강령을 채택하고 구엔후토를 의장으로 선출했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각계각층민중·소수민족·종교인 등 애국적민주세력을 단합시켜 미제외세를 몰아내고 민족민주정부를 수립하며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 기본목표를 뒀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주도가 돼 1969년 6월6일로 기록돼 있는 남베트남국민대표자대회 사진 등도 확인된다. 이 대회에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민족민주평화역량동맹을 비롯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여러정당·사회단체·종교공동체·각계민중대표들이 참가하여 남베트남공화임시혁명정부를 수립했다. 남베트남공화임시혁명정부는 이후 남베트남민중들의 지지를 확산시키며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받게 된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민중속에서 그 세를 확장하며 이미 남베트남정부가 장악한 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세금도 걷는 실질적인 정부로 성장했었다고 한다. 


1975년 4월30일 남베트남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 1976년 총선거를 통한 베트남통일이 완성될때까지 남베트남공화임시혁명정부는 남베트남에서의 정부역할을 수행했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미군의 압도적인 물량을 동원한 공격에도 힘을 더욱 강화시켰는데 이는 각종 무기와 물품을 보급해주었던 민중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무장투쟁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정치투쟁과 선전활동을 진행하며 민중들과 더욱더 가까워졌다한다.


1968년 1월30일 <구정대공세>시기 사이공주재미대사관폭파사건은 해방을 갈망하는 베트남민중들에겐 환호를, 미군과 남베트남정권에게는 간담을 서늘케 만들었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일정한 타격을 받았지만 베트남전쟁의 승패를 기울게 만든 중요한 투쟁으로 기록돼 있다.


사이공주재미대사관은 전쟁기간 베트남민중들의 많은 항의투쟁의 대상지였다. 현재는 미영사관이 자리잡은 곳으로 이곳 사거리 한모퉁이에는 1968년 1월 구정대공세에 공격받았던 자리임을 알려주는 비석도 있다. 그 비석을 사진찍으려했으나 안타깝게도 무장한 공안에 저지당해 촬영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해서 서울처럼 경찰차가 미대사관을 빙 둘러싸고 수많은 경찰들이 그 주변에 상주하며 경계하는 모습은 아니다. 미대사관을 무슨 궁궐수비대처럼 지키고 있는 경찰은 세계에서도 남코리아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베트남의 영원한 주석 호치민도 남베트남민중들의 투쟁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 호치민시에 있는 호치민박물관을 가보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지도자들과 반미반독재투쟁을 벌이는 민중들과의 만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환대했던 사진이 고스란히 이를 보여준다.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은신처인 구찌터널을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베트남민중의 투쟁은 민중과 혈연적으로 연계되어있는 조직은 결코 패배할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점에서 반미자주통일의 과제가 놓여있는 남코리아운동세력에게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활동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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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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