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4
[노동신문]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혁명전통교양 활발히 진행

24일 노동신문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혁명전통교양 활발히 진행>, <우리 시대 청년대학생들의 고결한 사상정신적풍모>, <전화의 나날로부터 60여년>, <믿음으로 지펴주신 기적창조의 불길>, <평가의 절대적기준>, <제대군인들이 기수가 되도록 이끌어주어>, <교육기관들의 역할을 높이는 사업을 방법론있게>, <뜨거운 정성과 높은 실력을 지니고>, <탄전의 병기창을 믿음직하게 지켜가는 여성중대장>등을 보도했다.

다음은 전문이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혁명전통교양 활발히 진행

성, 중앙기관 당조직들에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앞으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을 더 자주 조직하여 모든 일군들과 군인들과 근로자들이 수령님들의 혁명사상과 불멸의 혁명업적을 깊이 체득하고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역사적인 백두산군마행군을 단행하시면서 특히 혁명의 지휘성원들이 수령님과 장군님을 닮은 견실하고 유능한 정치활동가들로 자기자신들을 철저히 준비하고 무장하려면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한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성, 중앙기관 당조직들에서는 위대한 김정은시대 일군이라면 누구나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관점밑에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적극 조직진행하여 일군들속에 백두의 혁명정신을 뼈속깊이 심어주고있다.

내각사무국 당조직에서는 지난 2월초 답사에 참가할 일군들을 대상으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한 당의 의도를 해설한 다음 답사기간 진행할 정치사업분공을 구체적으로 주었다.답사기간 투사들의 넋이 살아숨쉬는 전투장들과 구호나무들을 돌아보면서 선열들이 발휘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충실성의 전통을 깊이 새기게 하였다.《적기가》, 《혁명가》 등 혁명가요들을 가지고 소대별합창경연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발표모임도 진행하면서 투사들이 지닌 필승의 신념을 따라배우도록 하였다.

답사자들은 청봉의 밀림속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언몸을 녹이면서 항일의 피어린 전구마다에 새겨진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과 우리 당의 혁명전통의 본질, 기본내용에 대한 문답식학습경연을 진행하여 백두의 혁명정신을 깊이 체득하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당조직에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통하여 청년동맹일군들을 백두산정신을 체질화한 청년강국의 주인공들로 준비시키고있다.

답사를 조직하면서 당조직에서는 모든 청년동맹일군들이 눈보라속을 뚫고 백두의 전구들을 편답하며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투쟁기풍을 적극 따라배울데 대하여 강조하였다.그리고 답사과정에 진행할 정치사업방향도 구체적으로 주었다.

이에 따라 청년동맹일군들은 《가리라 백두산으로》의 노래높이 매일 70~100여리를 강행군하면서 혁명전적지마다에 맥박치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깊이 체득하였다.행군노상에서 합창경연, 소묘경연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사업을 진행하여 백두산정신을 뼈에 새기였다.강추위속에서 언 주먹밥과 삶은 통강냉이를 먹고 천막에서 숙영하면서 항일선열들이 지니였던 강인성, 투쟁성, 혁명성이 어떤것인가를 실지 체험하였다.

육해운성 당조직에서는 지난 1월 30여명의 당일군답사행군대를 조직한데 이어 2월에도 답사를 조직하고 겨울철에도 혁명전적지답사를 많이 조직할데 대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말씀에 담겨진 깊은 뜻을 해설해주었다.우등불모임, 시랑송모임 등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사상사업을 진행하도록 정치사업방향을 구체적으로 주었다.

답사자들은 백두산에 올랐을 때와 청봉의 밀림속에서 우등불모임을 진행할 때 장편서사시 《백두산》과 설화시 《영원한 조선의 행군길》을 랑송하면서 백두산공격정신으로 당창건 75돐에 드리는 자랑찬 노력적선물을 마련할 불같은 결의를 피력하였다.

혁명사적지도국 당조직에서 지도국일군들이 온 나라에 혁명전통교양의 열풍을 세차게 일으키는 선도자가 되도록 사업을 면밀하게 짜고들어 진행하고있다.

지난 2월초 전국혁명사적일군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이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혁명력사와 업적을 깊이 체득하고 백두의 혁명정신을 만장약한 백절불굴의 혁명가, 열혈투사로 자신을 튼튼히 준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게 조직사업을 짜고들었으며 3월에도 수십명의 지도국일군들로 답사를 조직하였다.

의학연구원 당조직에서는 답사행군노정에 있는 모든 혁명전적지, 답사숙영소마다에서 당중앙결사옹위정신을 높이 발휘할데 대한 문제, 좋은 일을 적극 찾아할데 대한 문제 등을 강조하면서 답사자들이 투사들의 높은 정신세계를 적극 따라배우도록 하였다.답사자들은 삼지연대기념비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과 답사숙영소들에 모셔진 절세위인들의 영상작품주변관리사업에 깨끗한 충성의 마음을 바쳤으며 답사숙영소마다에 지원물자를 마련해주는 미풍을 발휘하였다.

경공업성 당조직에서는 답사과정에 항일유격대원들의 군중공작방법을 구현하여 대중정치사업을 벌리도록 조직사업을 진행하였다.신사동혁명전적지를 답사한 일군들은 그곳 주민들에게 영광의 땅에서 사는 긍지를 안고 혁명전적지를 혁명전통교양의 거점답게 더 잘 꾸리며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앞장서자고 호소하였다.

이밖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국가검열위원회, 직총중앙위원회, 여맹중앙위원회, 교육위원회, 수도건설위원회, 전력공업성, 중앙검찰소, 국가과학원을 비롯한 많은 성, 중앙기관 당조직들에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실속있게 조직진행하여 일군들과 종업원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무장시키고 있다.

우리 시대 청년대학생들의 고결한 사상정신적풍모

각지 사범대학, 교원대학 졸업반학생들 삼지연시와 최전연지대, 섬, 산골학교들에 적극 탄원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확실히 우리 당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청년들의 충정의 열도는 그 어디에도 비길데 없이 높습니다.》

백두의 혁명전통을 꿋꿋이 고수하고 우리 당의 후대사랑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어갈 열의밑에 각지 사범대학, 교원대학 졸업반학생들속에서 삼지연시와 최전연지대, 섬, 산골학교들에 적극 탄원하는 아름다운 소행들이 발휘되고있다.

리계순사리원사범대학 학생 김영임동무는 백두산정신으로 정면돌파전의 진격로를 힘차게 열어제낄데 대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들의 호소문에 접하고 자기도 《백두산대학》의 강사가 되여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기 위한 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칠 결심을 안고 당조직을 찾아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강사로 보내줄것을 열렬히 탄원하였다.

김형직사범대학 학생 한룡호동무는 혁명의 고향집이 자리잡고있는 삼지연시를 인민의 이상향으로 전변시켜주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는데 한생을 바칠 순결한 마음을 안고 삼지연시안의 학교교원으로 탄원하였으며 혜산교원대학 학생 리향옥동무도 혁명의 성지에 영원히 뿌리를 내리겠다고 하면서 부모들의 곁을 떠나 백두고급중학교에 가서 후대들을 나라의 역군으로 키우겠다고 결의해나섰다.

원산사범대학 학생 조선화동무는 평범한 노동자의 자식을 조선소년단창립 66돐경축행사에 불러주시여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교원양성의 원종장에서 마음껏 배우도록 하여주신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사랑과 배려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고 하면서 최전연지대 학교로 보내줄것을 당조직에 제기하였다.

사리원교원대학 학생 전향기동무도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청년대학생답게 조국의 방선을 지켜선 군인들의 자녀들을 키우는 든든한 뿌리가 되고싶다고 하면서 최전연지대 학교교원으로 탄원하였으며 남포사범대학 학생 량복동무는 공화국영웅이며 조국통일상수상자인 할아버지와 한생을 조국보위초소에 선 아버지처럼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 자기를 세워달라고 하면서 섬초소학교 교원으로 진출하겠다고 제기하였다.

최희숙함흥교원대학 학생 민류영동무는 외진 섬초소들을 찾으시여 아이들을 따뜻이 품에 안아주시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군인자녀들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해주제2사범대학 학생 조금철동무는 제대군인답게 당이 바라고 혁명이 요구하는 초소에서 후대들을 키우는 직업적혁명가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가겠다고 하면서 가족과 함께 섬분교 교원으로 탄원하였으며 선천교원대학 학생 원옥림동무도 우리 당의 후대사랑, 미래사랑의 숭고한 뜻을 꽃피워갈 일념 안고 섬분교에 탄원하여 후대교육사업에 한생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평성사범대학 학생 채금철동무는 당조직에 찾아가 고급중학교 교원인 안해와 함께 산골학교에 가서 당의 뜻을 받들어 후대교육사업에 모든것을 바치겠다고 하면서 녕원군 읍에서 백수십리나 떨어진 창산리의 분교에 부부교원으로 배치해달라고 하였으며 김정숙교원대학 학생 최정향동무도 후대들을 키우는 사업에 한생을 바치고있는 참된 교육자들처럼 살고싶은 불타는 지향을 안고 청년동맹조직에 찾아가 산골학교 교원으로 보내줄것을 제기하였다.

이밖에도 김형직사범대학 학생 김명철, 평성사범대학 학생 김연아, 라옥, 최윤정, 남포사범대학 학생 박지유, 박영아, 한금주, 리성, 홍복희, 최송영, 김은옥, 서정미, 남포교원대학 학생 강성민, 김정림, 차광수신의주제1사범대학 학생 문철진, 신의주교원대학 학생 오경미, 김순영, 류은영, 선천교원대학 학생 전순정, 조옥희해주교원대학 학생 남궁련, 리정아, 강계제1사범대학 학생 강홍경, 박은정, 량진희, 변윤경, 강계제2사범대학 학생 전경준, 원산사범대학 학생 문학수, 박연미, 리수덕원산교원대학 학생 류혜성, 김소연, 고혜성, 장선영, 오중흡청진사범대학 학생 리금경, 전송림, 김은정, 김정숙교원대학 학생 배윤경, 박소연, 최희숙함흥교원대학 학생 박미향, 김일숙동무들이 삼지연시와 최전연지대, 섬, 산골학교들에 적극 탄원하였다.

당이 바라는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한생을 바칠 소중한 꿈을 안고 삼지연시와 최전연지대, 섬, 산골학교들에 탄원한 청년대학생들의 애국적소행은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에서만 꽃펴날수 있는 감동깊은 화폭이며 당의 품속에서 교양육성된 우리 청년들의 고결한 사상정신적풍모의 발현이다.

전화의 나날로부터 60여년

역사의 땅 원화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은혜로운 사랑의 이야기

사연도 많고 뜻도 깊은 역사의 땅 원화리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태전 11월에 있은 가슴뜨거운 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날은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63돐을 3일 앞둔 날이였다.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그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평안남도당위원회에서 올린 문건을 마주하게 되시였다.원화협동농장에서 결산분배와 관련하여 명예농장원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분배몫을 올린다는 내용의 문건이였다.

전화의 나날 원화리농민들과 함께 밭고랑도 째시고 삼태기로 거름도 내시며 씨앗을 묻으시였으며 전후 협동조합이 조직되였을 때에는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자신께서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신 어버이수령님!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선거의 날인 어느해 11월 자신께서도 원화협동농장의 명예농장원이라고, 그러니 원화협동농장은 다른 협동농장들보다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도당위원회에서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

우리 조국에서의 수령과 인민의 위대한 단결, 그 빛나는 역사의 축도이며 증견자인 평원군 원화리,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의 심중에 만단사연과 더불어 참으로 깊이 간직된 역사의 고장이였다.

* *

어버이수령님께서 원화리농민들과 첫 인연을 맺으신 날은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이였다.

키낮은 울바자에 달린 사립문은 열려져있었으나 집주인을 깨우지 못하게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검부레기들이 흩날리는 쌀쌀한 한지에서 새날을 맞으시였다.이제 날이 밝으면 또 씨붙임전투를 해야 할 마을사람들을 다문 얼마간만이라도 더 재우려고 마음쓰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날 종일 농민들과 승리의 씨앗을 뿌리시며 폭탄구뎅이도 메우고 곡식을 심어야 하며 빈땅같은것도 잘 이용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땅을 한치도 묵이지 말고 모조리 경작함으로써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쉴참에는 울퉁불퉁한 논머리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노인들에게 담배도 권하시며 농촌경리를 발전시키려면 관개공사를 비롯하여 할 일이 대단히 많은데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농민들이 하나로 뭉쳐 일한다면 많은 일을 성과적으로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해야 농민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수 있다고,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단합된 힘으로 마을을 잘 꾸려나가면 원화리는 오곡이 무르익고 백과주렁지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고장으로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사회주의협동화의 장엄한 포성과 함께 원화리에 협동조합이 태여났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쁨에 넘치시여 조합원명단에 자신의 존함을 써넣도록 하시였다.

지금으로부터 35년전 4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된 자리에서 어느 한 나라의 농업생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일행은 자기들이 어느 협동농장을 참관했을 때 그 농장의 농장원명부에 주석님과 김정일동지의 존함이 있는것을 보았다고 수령님께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농장이 바로 평원군에 있는 원화협동농장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전후 우리 나라에서 농업협동조합이 한창 조직될 때 평원군 원화리에 나가 그곳 조합원들과 담화하면서 나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였습니다.그때부터 나는 원화농업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등록되였습니다.》

찾으실 때마다 원화리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업협동화의 본보기가 마련된 영광의 땅이라고, 나도 여기 조합원이라고, 우리 함께 농사를 잘해서 원화협동농장을 발전시켜보자고 말씀하시며 농산계획도 친히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참으로 원화리농민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갓 조직된 조합에서 운수수단이 부족되여 애로를 느끼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여러필의 말과 달구지를 보내주시고 자신께서 저택에서 보시던 수많은 농업기술도서와 함께 이용하시던 라디오까지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원화리농민들이 추워할세라 수백벌의 솜옷도 마련해주시고 그들의 세간을 불구어주시려 수백마리의 양, 오리, 닭, 돼지를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어느해 6월 어버이수령님께서 또다시 원화협동농장을 찾으시였다.

전후에는 이 협동농장에 폭탄구뎅이, 금점구뎅이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메우고 토지를 멀끔하게 정리해놓으니 아주 좋다고, 그동안 원화협동농장에서 일을 많이 하였다고 원화리가 걸어온 길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원화리는 내가 전후에 농촌을 지도하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처음으로 무은 곳입니다. 그때 원화리에 좋은 노인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퍽 늙었을것입니다.그때 내가 남편이 적들에게 피살된 한 아주머니의 아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었습니다.그 아주머니의 아들은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인민군 어느 부대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습니다.아마 그 아주머니도 이제는 늙었을것입니다.》

그 여인이 아직 농장에서 일하고있다는것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쁘시여 전쟁시기 원화리를 지도할 때 찍은 사진이 우리 집에도 있다고 기쁨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역사의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은 전후에 농업협동조합을 무을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전후에는 농촌에서 협동화를 실현하는것이 선차적인 문제로 나섰지만 지금은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여 노력을 적게 들이고 일을 헐하게 하는것이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고 하시면서 기계화의 앞날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토지정리를 할수 있는 밭들은 다 정리하여 모든 영농작업을 기계로 할데 대한 문제, 강냉이영양단지모옮겨심기도 기계로 할데 대한 문제, 김도 기계와 살초제로 잡고 후치질도 기계로 하고 가을걷이도 기계로 할데 대한 문제…

혈연의 정을 나눈 원화리농민들을 극진히 위하시는 기슭이 없는 사랑의 대하였다.

원화리사람들이 평양견학을 하게 되였을 때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는것인가.

몸소 여러대의 운수수단을 보내주시면서 견학은 어디어디를 하고 점심식사는 어느 식당에서 하라고까지 미리 정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견학을 떠나면서 원화리사람들은 친정아버지의 집을 찾는 자식의 심정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과일나무모들을 정성껏 가꾸어 따들인 첫 과일을 알알이 골라가지고 떠났다.평양견학의 나날 그들은 온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깃든 첫 과일을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올리였다.

평양사람들 아니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원화리농민들이 평양견학을 떠들썩하게 하고 돌아온 다음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원화리를 찾으시여 평양견학을 한 소감에 대하여 한사람한사람에게서 들어주시였다.

그런데 어이하랴.어버이수령님께서 그 과일값을 친히 보내주신것 아닌가.

우리 수령님은 이렇게 원화리사람들의 생활에 보탬을 주시려고 늘 마음쓰신 친어버이이시였다.

언제인가는 새로 건설된 살림집을 돌아보시며 집이 참 좋다고, 이런 집에서는 땅의 주인인 우리 농민들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흰쌀밥과 물고기반찬을 보시고서는 원화리농장원들의 생활이 이만하면 괜찮아졌다고 더없이 만족해하신 어버이수령님,

비내리는 봄날에는 질척한 포전에 들어서시여 어린 랭상모의 잎을 하나하나 세여보시며 모를 낼 날자까지 확정해주시고 논과 밭이 꺼지게 농사가 잘된 그해 가을에는 물결치는 벼이삭을 쓸어보시며 이삭당 알수까지 가늠해보신 어버이수령님이시다.

이렇게 찾고 또 찾으시여 수십차례…

원화리농민들과 혈연의 정을 나누신 전화의 그날부터 위대한 혁명생애의 나날 늘 그들과 함께 계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원화협동농장을 더욱 살기 좋은 문화농촌으로 전변시켜주시려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겨가신 헌신과 노고의 역사는 또 얼마나 뜨겁게 전해지고있는것인가.

어느해 2월 16일이였다.

원화리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원화협동농장은 수령님께서 몸소 농장원이 되시여 이끌어주시는 농장이라고, 수령님께서는 어느 하루도 원화협동농장을 잊으신적이 없다고, 얼마전에도 수령님께서는 원화협동농장이 올해 농사차비를 어떻게 하고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의 현지지도는 우리 장군님께서 만류하는 일군들에게 원래 자신께서는 생일을 쇠지 않는다고, 자신께서는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릴 일감을 찾아냈을 때가 제일 즐겁다고 하시며 진행하신 뜻깊은 현지지도였다.

이렇게 농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눈덮인 비탈길에 사랑의 자욱자욱을 수놓아가시며 원화협동농장에서 농사도 잘 짓고 마을도 잘 꾸리며 과수원도 더 많이 조성하여 농장살림을 한계단 높이 추켜세울데 대하여, 문화주택도 계속 지어 모든 농장원들이 문화주택에서 살게 하며 마을들을 위생문화적으로 깨끗이 거두고 도로들도 잘 관리하여 농장을 더욱 살기 좋은 문화농촌으로 전변시킬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게 원화리를 찾고 또 찾으시는 나날에 어버이수령님을 높이 모신 원화협동농장 농장원명단에 자신의 존함을 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원화땅을 찾고 또 찾으시며 농장살림을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덕에 어이하면 보답할것인가.

이런 절절한 생각으로 가슴 불태우며 원화리사람들은 직심스럽게 농사를 지었고 살림을 윤택하게 꾸려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농장원총회를 열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몫으로 매해 농장원들이 받는 분배몫을 평균기준으로 하여 현금을 저금해놓기로 결정하였다.하여 원화협동농장에 사연깊은 두개의 저금통장이 생겨나게 되였던것이다.

이렇게 10년동안 저금해두었던 분배몫을 원화리사람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10년이 되는 해 가을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올리였다.

한 일군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무척 감회로우시였다.그리고 기쁘시였다.

협동조합을 처음 조직할 때는 이불도 변변한것이 없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기쁘신 어조로 일군에게 물으시였다.

동무는 이 노래를 아오?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가.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화협동농장에서 자신의 몫으로 10년동안 분배하여 저금한 돈으로 농장에 모자라는 륜전기재들을 보충해주도록 하자고 이르시였다.

며칠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을 부르시여 원화협동농장 농장원들이 무엇을 요구하던가고 물으시였다.

뜨락또르와 연결차, 화물자동차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농장원들의 의사를 헤아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곧 수첩을 펼치시고 윤전기재들의 값과 대수를 맞춰가시며 계산하시였다.

우리 농민들에게 꽃피는 사회주의 새 생활을 마련해주시고 오늘은 또 자신의 분배몫으로 농기계들까지 사서 보내주시려 마음쓰시는 어버이수령님,

전화의 나날부터 깊은 인연을 맺은 원화리농민들이 잘살게 된것이 그리도 기쁘고 만족하시여 그처럼 행복에 겨워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은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이렇게 마련해주신 뜨락또르와 연결차, 자동차들이 줄지어 원화땅에 들어서는 날 마을사람들은 10여리밖에까지 마중나와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았던가.…

그때로부터 24년이 되는 두해전 11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역사의 땅 원화리농민들이 위대한 수령님들께 분배몫을 올리게 되는 자료를 보게 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들과 가슴뜨거운 혈연의 정을 맺은 원화리농민들이 올린 사연깊은 분배몫에 대한 자료를 보게 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감회와 격정이 얼마나 크시였으랴.

원화리농민들을 지극히 위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사랑의 한평생을 더듬으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뜨겁게 회억하시였다.

《1993년 가을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신의 분배몫을 받으시고 그 돈으로 원화협동농장에 자동차와 농기계들을 마련하여 보내주신 그날 일군들이 우리 수령님께 또 빈봉투만 남았다고 말씀올렸습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왜 빈봉투겠소, 인민들을 위해 바친 그 빈봉투가 나에게는 억만금이 담겨진것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습니다.》

인민을 위하시는 수령님의 그날의 그 교시를 되새기시며 가슴후더워짐을 금치 못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지금까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분배몫으로 올린 알곡과 현금가운데서 알곡은 농장원들에게 그대로 나누어주며 현금으로는 화물자동차와 뜨락또르, 비료를 마련하여 농장에 보내주자고 하시였다.

원화리농민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을 이어주시려 수령님들의 마음까지 합쳐 세상이 알지 못하는 유례없는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신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시고 일하는 원화리농민들에 대한 그이의 사랑은 이렇듯 강렬한것이였다.

며칠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많은 양의 알곡과 화물자동차, 뜨락또르들, 비료가 원화리에 도착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시 농장을 찾으신것만 같아, 그처럼 오매불망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진것 같아 온 원화땅이 끓어번지였다.

자기들의 정성이 고인 한알한알의 낟알이 우리 원수님께 드리는 따끈한 밥 한그릇이라도 되여주길 간절히 바랐건만 그대로 집집에 다시 돌아올줄 어찌 알았으랴.

농장원들은 목메여 흐느끼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일편단심 높이 모시고 받들 불타는 일념으로 심장의 목소리를 터치였다.

어버이수령님들을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시고 살며 일하는 원화땅의 농민으로서의 자각을 더 깊이 간직하고 역사의 대지를 더욱 기름지게 가꾸어 년년 풍년가을을 안아오며 영광의 땅을 사회주의무릉도원으로 꾸려갈 불타는 맹세였다.

그 격동적인 자료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밤깊도록 한장한장 기쁨속에 보고 또 보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원화협동농장 농장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올린 분배몫이 다시 자기들에게 차례진데 대하여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부러워할 만복을 받아안은 사랑의 대지 원화땅은 오늘도 불도가니마냥 끓고있다.

친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경애하는 원수님을 그리며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역사의 땅 원화리농민들이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이 걸어온 역사의 축도인 원화리,

원화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역사가 련면히 흐르는 대지, 일심단결의 송가가 끝없이 메아리치는 땅이다.

인간은 정에 살며 그리움에 산다고 한다.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욱 강렬한 정에 사는 인민의 열화같은 진정을 그렇듯 사려깊이 헤아리시여 유례없는 화폭을 펼쳐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과 같으신 그런 위대한 어버이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 당의 혼연일체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이 이야기는 천만사람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어주며 우리 인민모두를 영원한 그리움과 충성의 일편단심에 살게 하는 귀중한 사상적양식으로 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한평생 인민을 위하신 수령님들의 사랑의 역사를 끝없이 이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원화리만이 아닌 이 땅 그 어디에서나 은혜로운 사랑의 역사가 줄기차게 흐르고 그 격동적인 날과 달과 더불어 위대한 혼연일체의 년대기가 더욱 광휘롭게 수놓아지고있는것이 바로 우리 조국의 감동적인 현실이다.

믿음으로 지펴주신 기적창조의 불길

자력갱생의 선구자, 불굴의 투사

위대한 장군님께서 높고 험한 마식령을 넘으시여 새로 건설한 원산청년발전소를 찾으시였던 10여년전의 그날은 소한날이였다.

아슬한 산벼랑을 타고 줄줄이 뻗어내린 아름드리압력철관로들, 전기를 꽝꽝 생산하고있는 1호, 2호발전소,

이 모든것을 기쁨속에 보아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원도에서는 원산청년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원자탄보다 더 위력한 정신력을 발휘하였다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몸소 발전소건설구상을 펼쳐주시고 전선시찰의 그 바쁘신 속에서 언제건설장을 찾아 크나큰 고무를 주시며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그런데도 그 모든 공로를 고스란히 도의 인민들에게 돌려주시니 일군들은 끓어오르는 격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원도안의 일군들과 인민들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사랑을 담아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강원도인민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자력갱생의 선구자들이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심어주신 자력갱생혁명정신의 위대한 생활력을 실천으로 증시한 불굴의 투사들이라고.

소한날의 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있었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하늘같은 믿음을 받아안은 일군들의 심장은 불을 안은듯 뜨거워올랐다.

혁명적인 노동계급의 대부대가 있기에

주체99(2010)년 6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돌아보시던 때의 일이다.

당시 기업소에서는 짧은 기간에 가스화공정건설을 끝내는 기적적인 성과를 이룩하였다.

기운차게 돌아가는 생산공정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당의 결정지시라면 그 어떤 어려운 과업도 무조건 관철하는 자랑스러운 투쟁전통을 가지고있는 우리 노동계급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에 의하여 남흥가스화대상이 훌륭히 건설되여 주체비료폭포가 쏟아지게 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소를 찾으시여 주실수 있는 사랑을 다 안겨주시며 따뜻이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손길을 떠나 결코 생각할수 없는 현실이였다.

그런데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룩된 성과를 고스란히 기업소의 일군들과 노동계급에게 돌려주시며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를 높이 들고 가스화대상건설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운 건설자들과 같은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노동계급의 대부대가 억세게 떠받들고있기에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조국이 승승장구하는것이라는 최상최대의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정녕 위대한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노동계급에 대한 숭고한 믿음과 사랑이야말로 기적창조의 원천임을 다시금 새겨준 잊지 못할 순간이였다.

영웅적위훈의 주인공

9년전 4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책제철연합기업소를 찾아주시였을 때의 일이다.

일군들로부터 기업소녀성과외지원대의 활동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철에서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전례없는 성과가 이룩되던 나날에 기업소의 노동계급은 사상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며 평범하던 김철의 녀성들이 온 나라가 사랑하는 영웅적위훈의 주인공들로 자라났다고 하시면서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고있는 자랑스러운 녀성지원자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업소녀성과외지원대의 발기자인 대장을 자신의 곁에 부르시고 동무는 정말 쉽지 않은 녀성이라고 하시면서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김철의 녀성들이 받아안은 크나큰 사랑,

여기에는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의 녀성들이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힘있게 떠밀고나가는 주인공들답게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해나가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어려있었다.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평가의 절대적기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께서 그 어느 단위를 찾으시여도, 하나의 생산공정을 돌아보시고 하나의 제품을 보아주시면서도 제일먼저 관심하시는 문제가 있다.

인민들이 좋아하는가, 인민들이 실지 덕을 보는가 하는것이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수령님과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인민을 하늘같이 여기고 무한히 존대하고 내세워주며 인민의 요구와 이익을 첫자리에 놓고 모든 사업을 진행하여야 합니다.》

주체104(2015)년 1월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을 찾으시였다.

갖가지 식료품들이 줄줄이 쏟아지는 여러 생산공정을 돌아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어느 한 작업장에 들어서시였을 때였다.작업장안에 갖가지 식료품들이 가득차있었다.

공장의 일군이 생산된 제품들을 가리켜드리며 이 식료품들을 인민들이 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올리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식료품들을 만족하게 바라보시며 인민들이 이 식료품들을 다 좋아한다는데 인민들이 좋아한다니 자신께서도 기쁘다고, 인민들이 좋아하면 좋은것이라고, 모든 평가의 기준은 인민들의 평가이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인민들이 좋아하는 식료품들이 꽝꽝 생산되여 이렇게 가득 쌓여있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볼수록 흐뭇하다고, 정말 보기 드문 희한한 풍경이라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인민들이 좋아하면 좋은것이다.

모든 평가의 기준은 인민의 평가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은 일군들의 가슴에 커다란 여운을 안겨주었다.

언제나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첫자리에 놓으시고 그것을 모든 평가의 기준으로 삼으시는 우리 원수님,

인민을 하늘로 여기시며 인민에게 이 세상 제일 훌륭한것을 안겨주시려는 마음이 그리도 불같으시기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오늘 공장을 돌아보니 이 공장에서 생산한 식료품들이 사람들속에서 소문이 날만 하다고, 며칠전에 일군들과 무슨 문제를 토론할 때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한 식료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일군들가운데 이 공장에서 생산한 식료품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이 하나의 사실만 놓고보아도 이 공장 제품이 인민들속에 확고히 자리잡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며 더없이 기뻐하신것 아니랴.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지금 이 공장에서 만든 식료품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가 높은것만큼 공장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생산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며 식료품의 가지수를 늘이고 그 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인민의 이익과 편의를 최우선, 절대시하며 모든것을 인민의 요구와 이익을 기준으로 하여 평가하여야 한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이 어찌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만 새겨져있으랴.

한가지를 생산하여도 철두철미 우리 인민의 요구와 지향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는분, 설사 억만금을 들여야 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인민들에게 기쁨이 되고 실질적인 덕을 주는 일이라면 절대로 주저하지 않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이시다.

한없이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를 높이 모시여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의 구호는 인민의 가슴속에 더욱 소중히, 더욱 깊이 새겨지고 있다.

당사상사업을 친인민적, 친현실적으로 전환시켜나가자

제대군인들이 기수가 되도록 이끌어주어

운흥제련소 초급당위원회에서

운흥제련소 초급당위원회에서는 오늘의 정면돌파전의 앞장에 제대군인들을 내세우고 그들의 핵심적역할을 높여주어 맡겨진 혁명과업수행에서 혁신이 창조되게 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조직들은 제대군인들이 군사복무에 충실하였던것처럼 새로운 혁명초소에서 당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동제련직장에서 용광로보수를 하루빨리 다그쳐 끝내야 할 과제가 제기되였을 때의 일이다.

노보수에 필요한 내화벽돌을 비롯하여 제기되는 자재와 설비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돌격대를 무어 노보수를 벌리였지만 크게 전진이 없었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노보수를 앞당겨 끝내는 문제를 놓고 머리를 기웃거리기 시작하였다.남에게 의존하려는 내심도 비치였다.

이런 때 주경철초급당위원장은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대군인들의 선구자적역할에서 찾았다.

그는 제대군인들에게 호소하였다.

이렇게 끌끌한 제대군인들이 있으면서 이쯤한 난관도 뚫지 못한단 말인가,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결사관철해나가던 그 나날처럼 정면돌파전의 앞장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자.

제대군인들의 심장은 끓었다.기어이 용광로보수기일을 앞당길 불타는 열의를 안고 그들은 떨쳐나섰다.

초급당일군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부족되는 자재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군인들과 함께 단천과 함흥을 비롯한 수백리 먼길을 다녀오기도 하였다.그리고 작업의 쉴참에는 맨손으로 연길폭탄을 만들어 원쑤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긴 항일혁명선열들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그들의 뼈에 새겨주기도 하였다.

제대군인들은 더욱 분발하였다.한몸이 그대로 내화벽돌이 되여서라도 기어이 용광로보수기일을 앞당길 결사의 각오로 심장을 불태우며 그들은 정면돌파전의 앞장에서 핵심적역할을 다하였다.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된 제련소의 일군들과 기술자, 종업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로보수를 질적으로 다그쳐 끝내기 위한 사업을 물심양면으로 도와나섰다.이에 맞게 김영남지배인을 비롯한 행정일군들은 사업조직을 더욱 짜고들었다.

이렇게 되여 제련소에서는 동제련직장의 용광로보수를 성과적으로 끝내고 또다시 생산의 동음을 높이 울릴수 있었다.

지난 2월 직장의 기술자, 제대군인들은 초급당위원회의 지도밑에 전로에 규산광장입용설비를 새롭게 제작설치하여 당결정에 반영한대로 새 기술혁신을 위한 사업에서 또다시 큰걸음을 내짚었다.

제대군인들을 앞장에 내세워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성과를 확대해나가고있는 이곳 초급당위원회의 앞으로의 사업이 기대된다.

교육기관들의 역할을 높이는 사업을 방법론있게

지난해 시(구역), 군교육사업판정총화에서 높이 평가된 모란봉구역에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의 지휘성원들인 일군들이 교육사업에 발벗고나서야 합니다.》

지난해 전국적인 시(구역), 군교육사업판정총화에서 모란봉구역이 단연 1등을 하였다.

이것은 당의 인재중시, 교육중시정책관철을 위해 모란봉구역 일군들이 피타게 노력해온 결과에 대한 응당한 평가로 된다.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울여온 이곳 일군들의 노력과 이 과정에 발휘된 사업기풍을 놓고도 구역이 1등을 하게 된 비결을 찾아볼수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모든 교육기관이 자기 책임을 다하게 하는 사업을 방법론있게 진행한것이라고 볼수 있다.

어느 구역에나 학교전교육기관과 초등 및 중등교육기관이 있다.그리고 매 교육기관에서는 교종별특성에 맞게 학생들이 다음단계의 교육을 충분히 받을수 있는 기초를 다져주고있다.

아래단계의 교육기관에서부터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책임적으로 하지 못한다면 다음단계 교육의 질이 담보될수 없다.기초가 약하면 그우에 크고 든든한 건물을 일떠세울수 없는것과 마찬가지이다.

구역의 일군들이 잘한것은 바로 교육에서 순차성과 연관성을 보장할수 있게 매 교육기관이 자기 역할을 높이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린것이다.여기에서 기본은 교원들의 자질문제와 새 교육방법의 창조도입으로 보았다.그리하여 우선 교원들의 자질향상사업을 교육기관들에만 맡겨놓은것이 아니라 일군들이 틀어쥐고 구역적인 사업으로 목적지향성있게, 일관하게 밀고나간것이다.

구역책임일군들부터가 각 교육기관별로 교수참관을 매주 1차이상 진행하면서 교원들과 교양원들의 자질향상사업을 직접 틀어쥐고 내밀었다.이렇게 하니 걸린 문제들이 제때에 로출되고 부족점들을 찾아 극복하기 위한 사업도 실속있게 진행되였다.

제14차 전국교원대회이후 구역당위원회 책임일군이 긴마을소학교에서 교수참관을 진행할 때였다.책임일군은 1학년 학생들이 수업내용을 인식하고 발표하는 수준이 서로 다른것을 포착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수업후 이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세우겠는가고 물었을 때 교원들의 대답도 각이하였다.이때 한 교원이 학업성적이 뒤떨어진 학생들속에도 어떤 과목에 한해서는 천성적인 재능의 싹이 있으므로 그것을 적극 조장발전시킨다면 학습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점차 실력을 높일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책임일군은 그 교원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였다.그리하여 모든 학생들의 천성과 소질을 적극 발양시킬수 있는 과외교육교양방법을 받아들이며 학생들을 다방면적으로 키울데 대한 문제를 놓고 협의회가 다시 진행되였다.그후 이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과외소조들이 더 나오게 되였다.

과외소조를 많이 내온데 그친것이 아니라 매 교원이 여러 소조를 맡아 원만히 운영할수 있도록 자질향상을 따라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조직사업을 하였고 이 학교의 경험을 일반화해나갔다.

이를 계기로 소학교뿐만이 아니라 유치원과 초급 및 고급중학교에서도 교종별특성에 맞는 교육방법을 창조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이 적극 벌어졌다.

이 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하여 구역에서는 개선유치원과 비파고급중학교에서 교종의 특성이 살아나는 본보기를 창조하도록 하였다.그리고 책임일군들은 물론이고 교육부문 일군들이 수시로 그 단위들에 나가 교육자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진지한 토의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 개선유치원에서는 주산교육을 통하여 유치원어린이들속에서 수자에 대한 정확한 표상과 함께 계산능력, 영상기억능력을 현저히 높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유치원교육단계에서 과학, 예술, 콤퓨터, 로보트, 외국어교육을 줄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마련할수 있었다.비파고급중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속독의 일반적인 묘리를 터득시키고 그들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주어 지능계발교육에서 본보기를 창조하였다.

개선유치원의 주산교육경험, 긴마을소학교의 과외소조운영경험, 비파고급중학교의 속독교육경험을 일반화하는 과정에 모든 교육기관에서는 교종별로 자기 단위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정확히 알고 분발하게 되였다.

결과 유치원으로부터 고급중학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교종별특성에 맞게 새로운 교육방법을 창조하기 위한 경쟁열풍이 일어나게 되였으며 그것은 곧 교원들의 자질향상과 학생실력을 높이는데로 이어졌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구역일군들이 또 한가지 강하게 내밀고있는 사업이 있다.

분기에 한번씩 교종별, 과목별분과장협의회를 구역적으로 진행하여 분기간 각 분과들이 이룩한 성과와 경험을 총화해주고 따라앞서기, 따라배우기, 경험교환운동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고있는것이다.

여기서 특징적인것은 한 교육단위안에서 서로 다른 학과목분과들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구역적인 범위에서 같은 교종, 같은 학과목분과들사이의 경쟁분위기를 조성한것이다.

이렇게 같은 분과들사이의 경쟁열의를 구역적인 범위에서 고조시키니 분과장들의 책임성과 역할이 전례없이 높아지고 분과를 단위로 하는 교수연구, 학습열풍이 보다 세차게 일어번지게 되였다.이것은 전반적인 교원들의 자질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구역의 초등 및 중등교육부문 교육자들속에서 학위소유자대열이 점점 늘어나고있는것이 우연하지 않다.

각 교종별로 본보기를 창조하고 일반화하는것, 분기에 한번씩 교종별, 과목별분과장협의회를 진행하고 총화하는것, 이런 사업이 얼핏 보기에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할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이 모든 교육기관의 역할을 높이는데로 이어지고 전반적인 교원들의 자질을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수 없다.

모든 시(구역), 군들에서 모란봉구역의 일군들처럼 자기 지역 교육사업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입장에서 한가지씩이라도 착상하고 실천한다면 그만큼 나라의 교육이 더욱 발전하게 될것이다.

뜨거운 정성과 높은 실력을 지니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의료일군들은 인민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헌신적복무정신을 가져야 할뿐아니라 자질이 높아야 합니다.》

얼마전 우리는 모란봉구역에서 살고있는 한 녀성이 30여년만에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얼굴에 색소침착이 생겨 수십년동안 마음속의 그늘이 가셔지지 못했던 그가 자기의 고운 얼굴을 찾게 되였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우리는 평양의학대학 치과의학부 얼굴성형외과학강좌 교원 권영심동무의 뜨거운 정성과 높은 실력에 대하여 알수 있었다.그 녀성이 권영심동무에게서 치료받기로 결심한것은 몇해전이였다.

그때 그는 자기와 증상이 비슷한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권영심동무를 찾아왔던것이다.

자기를 믿고 온 녀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한 권영심동무는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병상태가 매우 심하였던것이다.

사실 그는 이런 환자를 직접 대상해보거나 치료해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환자가 자기 얼굴에 비낀 의혹과 근심의 기색을 엿볼세라 머리를 잠간 돌렸던 권영심동무는 곧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얼마든지 고칠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치료를 인차 시작하자고 하는 그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환자는 친혈육의 따뜻한 정을 느끼였다.

치료를 받기 시작해서야 녀인은 전국의 여러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권영심동무를 찾아왔다는것, 그중에서 자기의 병상태가 제일 심하지만 대담하게 치료에 달라붙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치료를 시작한 때로부터 몇달이 지났다.치료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게 되자 근심에 휩싸인 녀인의 마음속에서 동요의 파도가 일게 되였다.

(아무래도 못 고칠 병인데 나때문에 선생님들이 괜한 고생만 하지 않는가.)

당장이라도 치료를 그만두고싶었지만 자기를 위해 밤낮으로 자료를 연구하고 성의껏 치료해주는 권영심동무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치료가 해를 넘기며 진행되였지만 권영심동무에게서는 환자를 포기하려는 기색을 조금도 엿볼수 없었다.

그렇게 5년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어제날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이 환한 얼굴을 찾았을 때 녀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각종 도서를 집필하고 환자들에게 사심없이 뜨거운 정성을 쏟아붓는 나날에 권영심동무는 학위학직소유자로 자라났으며 오늘도 학생들을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떠받드는 믿음직한 기둥감들로 키우기 위하여 시간을 아껴가며 아글타글 노력하고 있다.

탄전의 병기창을 믿음직하게 지켜가는 여성중대장

룡등탄광 탄차수리중대 박애화동무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숭고한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김정일애국주의를 높이 발휘하여 자기 초소, 자기 일터에서 맡겨진 혁명임무를 책임적으로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부강조국건설에 이바지하여야 합니다.》

당의 신임에 의해 룡등탄광 탄차수리중대 사업을 맡게 되였을 때 박애화동무는 내가 꽤 해낼수 있을가 하고 자신에게 몇번이나 물어보았다.두 자식을 가진 가정부인인 자기에게 당이 안겨준 크나큰 믿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때문이였다.

이곳 탄광공무직장의 평범한 선반공이였던 그가 당의 품속에서 성장하여 탄차수리중대의 중대장사업을 맡게 되였을 때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손탁이 드센 남성들도 쉬이 맡아나설념을 하지 못하던 중대사업을 그가 여성의 몸으로 꽤 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때문이였다.

박애화동무가 중대형편을 살펴보니 참으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걱정이 많았다.해마다 계획을 미달하는 탄차수리실적, 낡은 건물들, 령이나 다름없는 후방사업 등 그 어느 하나도 마음에 차는것이 없었다.

그는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중대의 전투력을 높일 방도를 가지고 고심하였으나 쉬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탄차수리에 필요한 부속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출장을 떠났던 그는 잠시 집에 들렸다.작업복을 갈아입기 위해서였다.집문을 열고 들어서니 출장길에 쌓인 피로가 삽시에 온몸에 몰려들어 그는 잠시 망설이였다.

(좀 쉬고 나가면 어떨가.)

순간 그의 귀전에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탄차수리중대장으로 임명받던 날 자기를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던 탄광초급당일군의 말이였다.

《아마 중대를 추켜세우기가 조련치 않을거요.문제는 당의 믿음을 어떻게 간직하는가에 달려있소.》

그날 밤 초급당일군의 그 말이 왜 그토록 가슴을 파고드는지 박애화동무는 그제서야 깨닫는듯싶었다.

(당의 믿음을 나의 목숨처럼 안고 살자.그러면 우리 중대도 비약하는 현실에 하나하나 따라서게 될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자각하고 일터로 향하였다.

그는 자기 부문에 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교시와 당정책을 뼈에 새겨가며 중대원들앞에서 탄차수리는 우리모두에게 당이 안겨준 높은 믿음이라고,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지상의 과업이라고 열렬히 토로하였다.

온 중대가 화답하여나섰다.

어떻게 하나 중대를 추켜세워 맡겨진 탄차수리를 자체의 힘으로 해냄으로써 당의 믿음앞에 떳떳하게만 살려는 그의 진정이 모두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던것이다.그는 허심탄회하게 기능공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기대들을 되살려내기 위한 방도를 토론하였다.

중대에 탄차수리에 필요한 모든 부속품들을 전문 생산보장할수 있는 자력갱생기지들을 구축하기 위한 대책들도 하나둘 세워나갔다.

어느날 저녁 수리를 끝낸 탄차를 보는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용접한 부위가 곱지 못하고 회수한 철판을 잘라 붙인 자리도 매츨하지 못하였던것이였다.그는 실천적모범으로 중대원들을 이끌지 못한 자신을 채찍질하며 일손을 잡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지, 새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중대원들이 모여왔다.그는 얼굴을 들지 못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내가 일을 쓰게 하지 못해 탄차수리의 질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어요.우리모두 힘을 합쳐 탄차들을 질적으로 수리하여 탄부들에게 보내주자요.》

중대원들은 지휘관의 그 한마디의 말에서 탄차수리에 바쳐지는 자신들의 진정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뜨겁게 받아안을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남보다 더 땀을 흘리고 많은 걸음을 걸어야 했다.

중대원들이 분발하기 시작했다.언제인가 그가 탄차수리에 절실히 필요한 재생베아링의 질을 높여 그 수명을 몇배로 늘이자고 발기하였을 때 일부 일군들과 오랜 기능공들속에서는 그것만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하지만 중대장은 명백한 대답을 주었다.

《당에서는 우릴 믿고 탄차수리를 맡겨주었는데 베아링이 없어 탄차수리를 제대로 할수 없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팔짱끼고 앉아만 있다면 그건 당의 믿음을 받아안은 자신을 욕되게 하고 조국의 아픔을 외면하는 일이예요.》

그는 베아링을 생산하는 곳이라면 평양과 지방의 그 어디든 찾아가보았다.

그가 읽은 기술서적들은 얼마이고 새로 쌓은 주강로에서 잘 익은 쇠물빛을 가려보는 법을 익히기 위해 제손으로 쇠물을 녹여가며 남몰래 지새운 밤은 얼마인지 모른다.

언제인가 한번은 멀리 떨어진 대학에서 공부하는 그의 딸이 집에 방학을 온적이 있었다.

함께 일하는 중대원들이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여 딸을 만나보라고 권고하였으나 그는 좀처럼 자리를 뜰수 없었다.

중대에 건설한 주강로에서 내부예비를 동원하여 자체로 베아링강을 만들어내는 시험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시험을 성과적으로 마친 후 첫 시제품을 뽑아낸 기쁨을 안고 자기도 모르게 현장에서 쪽잠에 들었던 그는 꿈속이런듯 자기를 눈물겹게 바라보는 딸의 얼굴을 보게 되였다.

순간 그는 집에 방학을 온 딸이 자기와 만날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다 못해 이렇게 중대에까지 찾아왔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정말 미안하구나.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미처 네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

그러자 딸의 얼굴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날 저녁 그들모녀는 오래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탄전을 거닐었다.그러던 딸은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리였다.

어머니가 자기를 잊은채 막장에서 탄을 가득 싣고 나오는 탄차들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탄차를 세여보고 살펴보며 자기의 혈붙이마냥 정겹게 안아보는 그 강렬한 눈빛과 더불어 그의 눈에 비쳐진 어머니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게 안겨왔다.딸은 어머니의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 탄차들에 그렇게도 정이 가나요?》

그제서야 딸의 얼굴을 일별하고난 박애화동무는 또박또박 그루를 박아 말했다.

《저 탄차들은 당에 드리는 이 어머니의 마음이란다.》

그의 불타는 진정은 이렇듯 언제나 당이 맡겨준 탄차수리에만 깡그리 바쳐지고있었다.

제기되는 탄차수리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완전무결하게 해낼뿐아니라 매달 50여대의 예비탄차들을 마련하고있는 탄차수리중대의 전투력은 탄전의 모범으로 되고있다.

탄광의 석탄증산에 크게 이바지하는 탄차수리중대의 여성중대장!

그는 오늘도 당의 믿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탄전의 병기창을 믿음직하게 지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