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村의 印象

高利債에 울고 絶糧에 呻吟

= 오직 失鄕과 無情한 生離別로 길 메우는 길손 =(1)

人間以下의 位置에서 原始的生活

 

오늘의 농촌은 이미 그 생활속에 抒情이 메마른 奈落이다.

 

몇마지기의 논밭뙈기에 생명을 의지하고있는 가난한 농민들은 그날그날의 무한한 세월속에 묻혀 그저 살아오고 살아갈 뿐이다.

 

재산이래야 대대손손물려받은 흙과돌과 짚으로 엮은 초가 몇간이다. 방안을 들여다보면 웃목에 몇가마의 고구마만이 생명처럼 놓여있고 허술한 옷가지가 흙벽에 걸려 있을뿐이다

 

이것이 그들의 가산의 전부였다. 이것이 바로 조상의뼈를 묻어오며 한평생을 흙에 쏟은 피땀의 값이었다. 눈앞에 다가서는 춘궁기를 바라보며 목숨을 걸고 넘어서야할 밑천의 전부였다.

 

누적된 부패에 시달리고 天災를 막아내는 근대적인 시설이 없어 홍수때는 홍수 가물때는 가뭄의 禍를 입게 되어있는 우리나라 농민들은 인간이하의 위치에서 원시적인 생활이 어려울뿐이다.

 

高利債에 시달려 추수기에 벌써 수확의 태반을 빼앗기고 춘궁기가 되기도전에 絶糧을 면하지못하는 급박한 생활은 문자 그대로 에누리없는 生地獄이었다.

 

들 넓고 땅 기름져 쌀농사로 이름있는 호남이지만, 질펀한 흙내의 흐믓한 情趣는 어디로 사라지고 쪼들리는 생활속에 한그릇의 죽이 목숨처럼 아쉽다.

 

앙상히 뼈만 남은 빼빼마른 몸위에 허술한 잠방이를 걸친 그들의 초라한 모습에서 「민주주의」라는 「휴매닉」한 기미를 조금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굶주린 창자에 자유가 시들고 허술한 옷자락에 민주주의가 병들어가는 오늘의 농촌에 있어 오직 失鄕의 자유와 離農의 민주주의만은 남녀에 가림없고 老少차별없이 완전무결하게 보장되어 있었다.

 

봄이 오면 大地에 씨앗뿌릴 희망보다도 막막한 천리행을 그려보는 쓸쓸한 농촌의 처절한 현실이다.

 

어제도 오늘도 문전의 옥토에 한숨을 쏟으며 반겨줄 인정없는 서울로 부산으로 줄달음치는 유랑의 행렬이 그칠줄을 모른다.

 

식모살이를 가겠다는 나이 어린 소녀의 슬픔이 있는가하면 침모살이라도 하겠다는 다정한 부부간의 생이별이 있었다.

 

노동할 자리를 찾아 탈가하는 청년이 속출하는가 하면 지게품을 팔겠다고 六十평생을 살아온 고향땅을 등지는 할아버지의 비극이 있었다.

 

해방十六년 건국十三년 그리고 또 혁명 한돌을 눈앞에 두고서도 가난이라는 녹슨 쇠사슬에 꼼짝못하는 농민들이었다.

 

낡은 세력이 감투에 눈이 멀어 걷잡을 길없는 혼란만이 조장하고 있을때 근면과 성실을 신조로 흙을 의지하고 흙에서 살아가는 압도적 다수의 동포들은 못살겠다는 비명만을 뱉고 있었다.(張錫珍=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