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 우리는 小數의 利益이 아니라 多數의 利益을 위해 奉仕한다

오늘날 우리 生活周邊을 돌보면 繁榮意識 대신에 不安과 危機感이 充溢 되어 있다하겠다. 그리고 그 不安과 危機感의 實體가 良識에 依해서 究明되지 않은 채 그대로 放任되어 있을 다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不安과 危機에 對해서 時時刻刻으로 決斷을 내리지 않으면 아니 될 位置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不安과 危機와 對決하는 길은 傍觀이나 沈潛이 아니라 理性的인 思惟와 展望的인 智識뿐이다. 頹廢와 逃避의 文化가 그리고 反動과 愚昧한 政治가 때에는 우리들의 對決을 沮害할런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不安과 危機와 對決하는 것을 忌避하여서는 아니 된다.

 

오늘날 우리의 不安은 生活에서 오는 것이고 또한 危機는 싸움에서 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周邊을 돌보면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인 大衆들이 말할 수 없는 生活의 切迫感에서 呻吟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비비꼬이고 뒤틀인 現實속에서 來日이 아니라 오늘의 삶(生)을 위해서 허덕인다는 말이다. 한편에는 奢侈와 浪費가 마음대로 뒹굴고 있는가하면 또 다른 한편에는 메마른 삶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것이다. 한편에는 기름진 飽食이 있는가하면 또 다른 한편에는 바닥까지 다다른 窮乏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一聯의 現象이 決코 健全한 樣相일 수는 없을 줄 안다.

 

그러나 우리를 威脅하는 것은 非單 이 生活에서 오는 不安뿐만은 아니다. 中世紀에 있어서는 『終末의 날』을 啓示하였다는 『요하네의 ?示錄』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는 人類의 終末을 現實化할 수 있는 『핵무기』의 發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示에 그치는 終末이 아니라 現實化할 수 있는 終末이다. 그것은 또한 過去社會에서 볼 수 있었던 虛無的인 終末이 아니라 『世界 그 自體의 終末』을 의미하는 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留意하여야 할 것은 過去의 終末觀에 있어서의 契機는 『神의 忿怒』이었지만 오늘에 있어서의 契機는 『人間의 手中』에 있다는 點이다. 여기에 根本的인 틀림이 있는 것이다. 神의 意思에 달려 있었다고 할 때에는 虛無한 이야기지만 「救濟의 約束」이 있었지마는 人類自身의 手中에 그 契機가 掌握되고 있는 이 마당에 있어서는 救濟의 約束은 없는 줄 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오늘날의 一部政治指導者들이 戰爭을 云謂하는가 하면 一部 沒知覺한 似而非文化人들이 挑發的인 言辭를 쓴다는 것은 時代意識을 지니지 못한 錯覺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人類를 救濟할 수 없는 暗黑의 世界로 이끄는 結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點에서 생각할 때 人類를 爲한 平和的인 努力같이 高貴하고 價値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點은 좁은 이 땅이라는 地域에 있어서나 또는 널리는 世界라는 地域에서 있어서나 같으게 高貴하고 價値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 같은 問題意識에서 「民族日報」를 創刊하는 바이다. 우리는 앞으로 少數의 사람들에 依해서 多數의 사람들의 生活과 그 自由를 抑壓하는 일에 同調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多數의 生活과 그 自由에 對해서 抑壓과 攻擊을 加하는 少數의 特權과 그 自由를 위해서는 加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 民族日報)는 多數의 生活과 自由와 그 文化에 이바지하는 것이지 少數의 그것에 이바지할 생각은 秋毫도 없다는 것을 闡明하여 둔다.

 

그리고 또 우리 民族日報는 앞으로 「民族은 하나」라는 意識과 그 하나인 民族의 繁榮된 將來를 沮害하는 如何한 勢力과도 果敢하게 싸울 것을 말해두고 싶다. 이 같은 우리의 心情은 不幸하였던 이 民族의 來日의 幸福까지 破壞하여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民族의 來日의 幸福을 沮害하는 要素와는 恒常對決항상 대결하지 않을 수 없을 줄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現實的으로 存在하는 暴力의 威脅과 核武器의 威脅을 除去하는 데에 努力하여야하겠다. 破局이 온 後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威脅에 對한 逃避的인 性質은 도리어 보다 더 惡化되는 結果를 招來하기 쉬운 일이다.

 

우리는 事實을 正視하고 一般大衆들의 認識을 높여가야 하겠다. 武器의 破壞能力은 過去十五年동안에 一萬二千五百培로 上昇하고 있다는 事實을 잊어서는 아니 될 줄 안다. 科學者들이 「核武器에 대한 無感覺」을 警告하는가 하면 또한 높은 知性人들이 「政治人들의 휴매니티」를 要請하는 理由도 이 같은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옳은 생각과 옳은 努力이라도 個別的으로 分散되어 있고 또한 이루어지는 데에 있어서는 한 社會에 있어서 힘(力)을 形成할 수는 없는 줄 안다. 모든 옳은 생각과 옳은 努力은 大衆들의 感覺과 生活속에 浸透되고 그 大衆들의 意慾욕을 結集하게 하였을 때만 하나의 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點에서 우리는 大衆과 遊離된 獨善과 獨斷의 世界에서 自己陶醉는 하지 않겠다. 이 民族日報는 언제나 多數의 自由를 위한 것이고 또한 이 民族의 오늘의 繁榮과 來日의 幸福에 奉仕하는 新聞이 되기를 盟誓하는 바이다.

 

우리는 大衆과 먼 곳에 떨어져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大衆 속에서 成長하기를 自期하는 바다. 良識있는 人士들과 不遇한 大衆들의 鞭撻과 指導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民族日報 1961.2.13 創刊號)